한국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전국 규모의 항쟁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해지고 조직이 확대되었다. 1919년 '3.1운동', 1960년 '4월혁명', 1987년 '6월항쟁' 이후가 그렇다. 물론 2016-2017년 '촛불항쟁'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노동자 투쟁은 해방 이후 제2의 고양기를 맞았다. 4월혁명 희생자 186명 가운데 94명이 하층노동자 또는 무직자였다. 많은 노동자들이 시위과정에 개별로 참여했음을 알려준다. 노동자들의 시위참여와 함께 조직노동자들의 노동쟁의도 봇물처럼 터졌다. 1959년 95건에 4만 9,813명이 참가했던 쟁의가 1960년에는 227건에 6만 4,335명이 참가했다. 1960년 한해에 일어난 쟁의가 1953-1959년에 일어난 발생건수(216)를 넘어섰다. 쟁의 방식도 1950년대에는 동맹파업이라는 집단 투쟁이 7% 이하였는데 1960년에는 19%를 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께 노동조합도 확대되었다. 1959년에 노동조합 558개, 조합원 28만 438명이던 것이 1960년에는 노동조합 914개, 조합원 32만 1,097명으로 늘어났다. 1959년 558개 노동조합 가운데 새로 설립된 노동조합이 81개인데 반하여 1960년에는 한 해 동안 388개의 노동조합이 새로 설립되었다. 1959년 단위 노동조합의 평균 조합원수가 503명이었는데 1960년에 새로 설립된 조합의 평균조합원 수가 216명이었다는 것을 볼 때 주로 중소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신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50년대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이승만정권의 노동통제와 기업주들의 횡포로 중소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기 힘들었다. 4월혁명으로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넓혀진 것이다.

신규노조 건설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정신노동자인 교원, 은행원, 신문기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함으로서 노동조합운동의 폭을 넓혔다는 점이다. 4월혁명에 직간접으로 참여한 경험이 노동조합결성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1987년 6월항쟁의 거리에 참여하고 7.8.9 노동자투쟁을 지켜보던 화이트칼라노동자들이 이후 사무 전문직 노동조합을 결성한 추세와 비슷한 양상이다.

1960년 6월 1일 조흥은행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이어서 한국상업은행(6.8), 제일은행(6.11), 한일은행(6.11), 서울은행(6.18)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7월 23일에는 전국은행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다.

교원노조와 언론노조의 진원지는 대구였다. 대구는 1946년 10월 인민항쟁의 시발지이며,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대한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던 곳, 1959년 설립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국노협)의 근간이었던 대한노총 대구지구연맹 활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1960년 5월 15일 대구일보 기자들이 회사의 기술공 그리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대구일보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6월 17일에는 연합신문, 6월 22일에는 평화신문 기자들이 앞장서서 직장노동조합을 설립하였다.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은 교육의 자주성과 교사의 민주적 권리를 철저히 유린했다. 학원은 정치도구화 되었고, 교사들은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강요당했다. 교사 개인의 의지만 가지고는 제대로 가르칠 수도 가르친 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4월 혁명의 대열에 참가한 학생들이 "비겁합니다! 선생님!"하면서 피 흘리고 쓰러졌다. 방관하고 침묵하던 교사들은 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없이 부끄러웠다. 교실에서는 거리에 나가 시위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부끄러운 양심을 떨쳐내고 목소리를 내려면 조직이라는 그릇이 필요했다.

4월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교사들은 강력한 조직활동을 위하여 현행법상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있는 교원노동조합 조직에 나섰다. 먼저 4월혁명의 신호탄이 된 2.28 학생시위가 일어난 대구에서 4월 29일 전국 처음으로 학원민주화와 교육의 자주성을 내세우며 대구시교원조합결성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때도 "성직자라 할 수 있는 교원이, 점잖은 교원이 어찌 노조를 만들 수 있느냐"는 비난이 터져 나왔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교원들은 이에 대해 "이는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노동을 비천한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 밑에서, 신성한 교직과 노동은 상용(相容)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이조 500년 이래의 봉건적 반상 관념의 잔재로서, 구태여 거론할 가치조차 없음은 물론이다… 신시대 사조를 반영한 20세기 헌법의 거의 전부가 노동을 신성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헌법에 노동은 모든 국민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사상의 흐름에 비추어 보더라도 우리는 노동에 대한 관념을 보다 새롭고 엄숙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문교부 장관 이병도(실증사학의 태두라고 부르는!)는 교원노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탈퇴하지 않을 때는 파면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7월3일 대구에서 전국 규모의 공식집회인 전국대표자대회를 열었고, 7월17일에는 서울에서 제1차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하여 이름을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한국교조)'로 정하였다. 7월말까지 전체 교원의 25%에 해당하는 2만여명이 교원노조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과도정부와 4월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민주당 정권은 교원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회유와 압력과 탄압으로 무너뜨리려 하였다. 이승만 정권에서 야당이었으나 태생과 속성이 자유당과 다를 바 없는 민주당 정권의 본질이 드러났다. 9월 들어 민주당 정권은 노동법을 개악하여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을 원천 봉쇄하려고 시도하였다.

9월26일부터 30일까지 경북교원노조 조합원들이 집단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대구시내 중고등학생 1만4천여명이 연대동조투쟁을 벌였다. 9월28일 서울 사직공원에서 2천여 조합원이 참석하여 교조불법화반대 전국대표자대회를 개최하였다. 투쟁으로 법안상정을 막아냈다.

단식투쟁에 참가했던 경북교원노조원수는 6천270명, 단식 5일 동안 졸도자는 1천161명, 중태자는 426명, 입원자는 33명이었다. 교사들의 심약한 의지 탓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조건을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교원노조는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당국의 탄압과 해체기도에 맞서 합법성 투쟁과 함께 교육현장의 자유와 민주화, 교원의 신분보장과 사회 경제적 지위향상, 민주교육 실천, 2대 악법인 '반공임시특례법'과 '데모규제법' 제정 반대투쟁을 벌였다.

교원노동조합은 4월 혁명 와중에서 평교사가 중심이 되어 전국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노동자운동의 영역을 넓혔다. 또한 노동조합운동의 기본은 노동자라는 인식에 입각한 계급성, 권력과 자본에 대한 자주성, 조합원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민주적 의사 수렴을 바탕으로 한 민주성임 배워나갔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부는 5월17일부터 1천500여명에 이르는 교원노조 조합원을 체포하였다. 5.16쿠데타와 함께 바로 잡혀간 2천여명 가운데 2/3가 교원노조 조합원이었다. 교원노조운동은 일단 막을 내려야 했다.

때때로 역사는 사회진보를 가로막는 세력에 의해 제 갈 길이 막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언젠가 그 길은 다시 이어지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게 마련이다. 끊어진 듯 땅속으로 흐르던 교원노조 투쟁의 경험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출범으로 다시 역사의 전면에 떠올랐다.

박준성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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