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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이냐 ‘똥’이냐이스라엘 역사 알기 ㉘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1.03.25 15:51

엘리야의 대적 이세벨

이번 글에서는 「열왕기상 17장」에 갑자기 등장하여, 「열왕기하 9장」에 나타난 ‘이세벨’의 죽음에까지 관여하고 있는 ‘디셉 사람 엘리야’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엘리야’에 관한 특정 본문을 택하여 ‘엘리야’에 관해 깊이 있게 살펴보는 일도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엘리야’ 이야기 속에 조연인 듯 주연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세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열왕기상 17장-21장」의 본문을 큰 틀에서 생각하면, ‘엘리야’는 북왕국 ‘아합’과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열왕기상 18장 17절」에서 처음 ‘엘리야’를 만난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하고 인사하기 때문에 이런 대립 구도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결 구도 설정은 우리에게 혼란을 가져옵니다. ‘아합’은 생각보다 ‘엘리야’의 말에 순종적이기 때문입니다. 갈멜산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모아오라는 ‘엘리야’의 제안에 ‘아합’은 순순히 따릅니다(왕상18:18-20). 갈멜산 사건 이후 비가 내릴 때, ‘아합’과 ‘엘리야’는 함께 비가 오는 순간을 목도합니다(왕상18:41-44).

나봇의 포도원 사건이 일어난 후, ‘엘리야’가 ‘아합’을 꾸짖으러 갔을 때, ‘아합’은 ‘엘리야’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왕상21:20)” 이는 마치 ‘아합’과 ‘엘리야’의 대결 구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엘리야’의 꾸짖음을 들은 ‘아합’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받아주십니다(왕상21:27-29).

이런 ‘아합’의 모습은 우유부단하고 오락가락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 이유는 「열왕기상 17-21장」에 나타난 대립이 ‘엘리야’와 ‘아합’의 대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엘리야’와 대립하고 있는 인물은 그와 한 차례도 마주한 적이 없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입니다.

「열왕기상 16장 30-33절」은 ‘아합’이 얼마나 악한 왕이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합’은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길 정도였다고 말하는데(왕상16:31), 그는 바알을 섬겼고, 사마리아에 바알 제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행위의 시작점에는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의 결혼이 놓여있습니다.

존 그래이(John Gray)는 ‘이세벨(איזבל)’의 이름이 열왕기 역사가 집단에 의해 수정된 이름일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그녀의 본래 이름은 ‘이세불(izebul)’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가릿 문서에 따르면, ‘세불(zebul)’은 바알세불(Baalzebul)에서 나온 단어이며 ‘왕자(바알)’를 뜻하는 말입니다.

▲ 우가릿 바알 신화집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에 소장 중인 우가릿 토판 중 하나인 바알 신화집(Baal Cycle)입니다. 저희가 살펴보는 본문이 나타난 직접적인 토판은 아니지만, 우가릿 문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토판입니다.

우가릿 문서에 나타난 표현에 따르면 ‘i-zbl’은 ‘왕자는 어디에 계신가?’라는 뜻입니다. 즉 ‘이세벨’의 이름은 바알 제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이름도 바알 제의와 연결된 ‘엣바알(이토바알)’입니다.

현재의 「열왕기」에는 그녀의 이름에 모음이 붙어있는 형태인 ‘izebel’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0인역 헬라어 성경에도 ‘이세벨(Ιεζαβελ)’로 나타납니다. ‘zbl’에 모음 ‘e’가 붙어서 ‘zebel(세벨)’이 될 경우 이는 ‘똥’, ‘거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히브리어로 ‘이세벨(i-zebel)’이라고 하면 ‘똥이 아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본래 마소라 본문에 나타난 ‘이세벨’의 이름은 「열왕기하 9장 37절」에서 그녀가 죽을 때, 시체가 ‘똥(도멘, דמן)’같이 되었다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우리 성경에는 ‘거름’으로 번역되었는데, ‘똥’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세벨’은 ‘똥이 아니다’라는 뜻이지만, 그녀는 결국 ‘똥’이 되었다는 언어유희입니다(그래이, 『열왕기하』, 국제성서주석 10, 149).

그래이는 우가릿 문서와의 비교를 통해 ‘이세벨’의 이름은 단순 언어유희가 아니라 ‘바알’ 제의를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설명합니다(그래이, 『열왕기상』, 544-5). 그래이의 의견은 현재 많은 학자에 의해 지지받고 있지만, 마소라 본문만으로 「열왕기」를 본다면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이세벨’의 이름에 바알 제의라는 의미를 넣고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세벨(זבל)’이 ‘똥’이나 ‘거름’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고 ‘도멘(דמן)’이나 ‘페레쉬(פרשׁ)’가 사용됩니다. ‘똥’이라는 의미로 ‘세벨’이 사용되는 용례는 미쉬나에서나 찾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발견할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은 그녀의 이름에 포함된 ‘zebel이 본래 ‘바알’을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우상을 뜻하는 이 단어가 후대에 ‘똥’ 또는 ‘거름’이라는 의미로 변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zebel’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붙으면서 ‘이세벨’의 이름에도 다른 의미가 붙어 의도치 않게 언어유희가 되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zebel’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후대에 만들어졌고, 마소라 학자들이 바알 제의를 의미하던 ‘이세벨’의 이름에 ‘똥’이라는 의미를 덧붙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소라 사본보다 먼저 기록된 70인역 헬라어 성경에도 그녀의 이름이 ‘이세벨’로 나타나 있으며, 구약성경에서 용례를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zebel’이 ‘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아랍어에서 ‘zebel’이 ‘똥’을 의미한다는 점을 봤을 때, ‘이세벨’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똥’과 연결되어 읽혀왔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저는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중의적인 의미로 ‘이세벨’의 이름을 적고 있다고 봅니다. 언어유희로만 보기에는 그녀의 이름과 「열왕기상 17장 1절」에서 등장하는 ‘엘리야’의 이름과의 대비를 설명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엘리야(אליהו)’는 ‘야훼는 하나님이다’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열왕기」의 독자는 ‘이세벨’의 이름에 담긴 풍자적 의미를 보고 그녀의 이름을 지나쳐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등장과 뒤에 이어지는 ‘이세벨’과 ‘엘리야’의 대립은 그녀의 이름에 담긴 또다른 의미, ‘바알 제의’를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이들의 이름은 두 사람 개인의 대립이 아닌 ‘야훼’와 ‘바알’의 대립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신들의 대립 뒤에 담긴 또 다른 대립

이런 ‘야훼’와 ‘바알’의 대립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 사건일 것입니다. 구름을 타고 비를 내리는 폭풍의 신 ‘바알’ 제사장과 ‘엘리야’의 대결은 기도만으로 제단에 불이 붙는지를 겨루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려 제단의 제물과 도랑에 채워놓은 물까지 말렸다는 이야기는 바알이 비를 내리려고 할지라도 그보다 더 강한 야훼께서 물을 말려 가뭄을 일으키신다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엘리야’의 갈멜산 사건은 ‘아합’과 ‘엘리야’가 화목하게 비가 내리는 장면을 바라보며 끝났어야 맞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19장」은 이야기의 방향을 비틀어버립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를 죽였다는 소식을 접한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죽이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사신을 보내서 도망갈 시간을 주는 ‘이세벨’의 행동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이세벨’의 선포를 들은 ‘엘리야’는 호렙산으로 도망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보다 앞서 ‘이세벨’과 야훼 선지자들 간의 대립은 「열왕기상 18장 4절」에도 나타납니다. ‘이세벨’이 야훼 선지자들을 죽일 때 궁중 관리 ‘오바댜’가 그들 중 일부를 굴에 숨기고 먹거리를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이미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야훼’와 ‘바알’의 대결은 단지 신들의 대결이 아니라 ‘엘리야’와 ‘이세벨’의 대결 구도였음을 잊지 않도록 합니다. 이 둘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여실하게 보여줍니다.

이 둘의 대결 구도는 ‘엘리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됩니다. 「열왕기상 17장 9절」에서 ‘엘리야’는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먹을 것이 없는 과부의 집에서 유숙하게 되며, 그곳에서 기적을 일으켜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은 시돈 사람의 왕이었습니다. 학자들은 페니키아에 속한 두 지역 두로와 시돈 중 당시 지중해 해변 지역을 자치했던 지역은 두로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엣바알’ 역시 두로의 왕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열왕기」에서 그런 역사적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열왕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실은 ‘이세벨’의 아버지가 시돈의 왕이었고, ‘엘리야’가 그 시돈 땅으로 갔다는 사실입니다. 또 시돈 땅에는 굶주리고 있는 백성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는 형사취수제라는 법이 있습니다. 홀로 과부가 된 사람의 재산권을 보호해주는 법인데, 이 법이 언제 시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가릿 문서라고 불리는 라스 샴라 문서(Ras Shamra Tablets)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과부의 형편을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시돈 땅 사르밧에서 과부를 도와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이세벨’과 그의 아버지 ‘엣바알’의 무능한 통치를 풍자합니다. 그들이 어려운 백성의 처지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갈멜산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갈멜산 위치 ⓒGetty Image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갈멜산은 페니키아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학자 중에는 당시 갈멜산이 페니키아와의 경계에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페니키아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만약 ‘엘리야’ 이야기에 나타난 ‘야훼’와 ‘바알’의 대결이 신들의 대결 이상의 의미로 볼 수 있다면, 「열왕기상 18장 21절」에 나타난 ‘엘리야’의 선언,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라는 선언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 장소를 굳이 북왕국 북단이자 페니키아와의 경계에 있는 갈멜산으로 선정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장소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처참하게 죽입니다.

▲ 갈멜산에 세워진 엘리야 상 ⓒ위키피디아

위의 사진은 현재 갈멜산에 세워져 있는 엘리야상입니다. 자세히 보면 ‘엘리야’가 들고 있는 칼끝이 휘어져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칼이 휠 때까지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모두 죽였다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알 제의가 ‘이세벨’의 혼인과 함께 북왕국에 유입되었고, 페니키아 왕의 이름이 ‘엣바알’로 바알을 섬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면,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처참히 죽인 사건은 페니키아를 향한 무력시위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아합’은 이런 장면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엘리야’를 향한 복수를 선포합니다.

엘리야와 이세벨의 죽음

‘엘리야’와 ‘이세벨’의 대립 구도는 이 둘의 죽음과 그에 앞선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장」은 ‘엘리야’가 죽기 전에 행한 마지막 사건이 나타납니다. ‘엘리야’는 북왕국 ‘아하시야’ 왕에게 죽음을 선포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갑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오십부장과 병사 50명을 보냈지만, 이들은 ‘엘리야’의 기도에 의해 떨어진 불에 맞아 죽습니다. 왕이 두 번째로 보낸 51명도 마찬가지로 불에 맞아 죽고 세 번째로 간 이들만 살아서 ‘엘리야’와 함께 돌아옵니다. 왕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산을 찾았던 102명을 죽인 ‘엘리야’는 당당한 모습으로 ‘아하시야’ 앞에 나타나 다시 그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이후 「열왕기상 2장」에는 ‘엘리야’의 승천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엘리야’의 뒤에는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쫓아오는 ‘엘리사’가 있었습니다. 이후 ‘엘리야’와 ‘엘리사’는 불수레와 불말에 의해 갈라지게 되고,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엘리야’가 떠나간 곳에는 그의 겉옷만이 남았는데, 「열왕기상 2장 14절」에 따르면 ‘엘리사’는 그 겉옷을 물에 치기만 했을 뿐인데, 물이 이리저리 갈라져서 ‘엘리사’가 물을 건너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제 「열왕기하 9장」에 나타난 ‘이세벨’의 죽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북왕국 ‘여호람’과 남왕국 ‘아하시야’를 죽인 ‘예후’는 이스르엘에 있는 ‘이세벨’을 죽이기 위해 찾아갑니다. 이때 ‘이세벨’은 옷을 단정히 하고 당당하게 ‘예후’를 맞이합니다.

「열왕기하 9장 31절」에 따르면 ‘이세벨’은 ‘예후’가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예후’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시므리’는 ‘오므리’에 앞서 북왕국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사람으로 7일간 북왕국을 다스렸습니다. ‘예후’를 향한 ‘이세벨’의 말은 그의 반란을 비꼬면서, 그의 반란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세벨’의 태도는 ‘아하시야’의 병사를 맞는 ‘엘리야’의 태도처럼 당당해 보입니다.

이때 ‘이세벨’은 궁 안에서 창밖으로 ‘예후’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때 ‘예후’는 불특정다수를 향해 외칩니다.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그러자 ‘이세벨’의 곁을 지키던 내시들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자신들이 ‘예후’의 편에 설 것이라고 의사를 표명합니다. 그리고 ‘예후’의 명령에 따라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이세벨’이 죽은 후에 ‘예후’는 그래도 그녀가 왕의 딸이기 때문에 장례를 치러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떨어진 곳에서는 머리뼈와 손과 발 밖에 발견하지 못합니다. 「열왕기상 9장 36절」은 마치 개들이 그녀의 신체를 뜯어 먹었다고 연상케 합니다.

‘엘리야’와 ‘이세벨’의 죽음은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줍니다. 산 위에서 불을 내려 병사들을 불사르고 당당히 왕 앞에 내려간 ‘엘리야’와 궁전 위에서 ‘예후’를 바라보다가 땅에 떨어져 죽임을 당한 ‘이세벨’을 대비시킵니다.

또 ‘엘리야’에게는 끝까지 그를 따랐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세벨’의 곁에는 그녀를 지키는 사람, 그녀를 따르는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승천 이후 그가 떠난 자리에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는 그의 겉옷이 남았지만, ‘이세벨’이 죽은 곳에는 온전한 시체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의 의도

‘엘리야’ 설화는 여러 학자가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초기 형태에서 몇 차례 변형되어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초기 형태를 밝혀내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 차례에 걸친 편집으로 인해 ‘엘리야’ 설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보여주게 됩니다.

아마 ‘엘리야’ 설화의 초기 형태는 야훼 선지자 집단의 대두와 이제까지 이스라엘에 성행하던 종교 집단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철기시대 야훼 종교의 발달에 관해서는 그레비(Lester L. Grabbe)의 『고대 이스라엘 역사』 255-77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왕들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눈에 띄는 점은, 왕의 이름에 야훼라는 신명이 나타나는 시점이 ‘아합’ 이후라는 점입니다. ‘아합’의 아들인지 사위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여호람’은 ‘야훼께서 일으킨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야훼의 소유’라는 뜻이고, ‘아달랴’는 ‘야훼는 위대하다’라는 뜻입니다.

북왕국 ‘아합’의 즉위 직후에 남왕국에서 왕위에 오른 왕 ‘여호사밧’도 이름에 야훼 신명이 들어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야훼가 심판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사밧’의 존재로 인해 야훼 신앙이 남왕국에서 먼저 시작된 것인지, 북왕국에서 먼저 시작된 것인지 판단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를 비롯한 야훼 선지자의 태동에 관한 설화가 북왕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점과, ‘아합’과 ‘여호사밧’ 통치 시기에 남왕국은 북왕국의 속국과 마찬가지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종주국에서 종속국으로 종교가 전파되는 상황이 자연스럽다고 본다면, 야훼 신앙은 북왕국에서 전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디에서 먼저 시작했는가는 판단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북왕국 ‘아합’이 야훼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그가 자식들의 이름에 야훼 신명을 넣었다는 사실은 야훼 신앙이 북왕국의 중심 신앙으로 자리했음을 알게 합니다.

물론 존 브라이트(John Bright)와 같이 성경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학자들은 ‘아합’이 겉으로만 야훼를 섬겼고, 자식들의 이름은 이를 표출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합’이 이전에는 없었던 ‘야훼’ 신앙을 북왕국 내에 일으켰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열왕기」를 기록한 역사가 집단이 ‘야훼’ 신앙의 태동을 보여주고 이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 ‘엘리야’ 설화를 이용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야훼 신앙의 태동을 훨씬 이전으로 말하기 때문에 ‘엘리야’ 설화를 통해 야훼 신앙의 대두를 보여줄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바알이 아닌 야훼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서 ‘엘리야’와 ‘이세벨’의 대립 구도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따져본다면, 이 역시도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열왕기」가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는 직전 또는 직후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시각을 갖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이스라엘 역사 알기 ⒂ ‘므낫세는 야훼와 성전을 버렸을까’」에서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이방 국가에 의존하는 외교 형태를 비판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남왕국 ‘히스기야’를 ‘솔로몬’ 이후 최고의 왕으로 판단한 기준에는 그가 아시리아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남왕국 ‘므낫세’가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그의 친아시리아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이스라엘 역사 알기 ⒀ ‘유다 왕 므낫세에게 따라 붙는 꼬리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남왕국 ‘므낫세’의 행위는 대부분 북왕국 ‘아합’과 연결됩니다.

북왕국 ‘아합’이 펼친 정책은 반아시리아 정책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페니키아와 손을 잡았고 아람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특히 국제 교류에 있어서 페니키아와 상당히 가까운 입장을 취합니다. 그의 외교 정책은 페니키아의 속국 체제가 아니라 동맹 관계였지만,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이마저도 비판합니다.

그렇기에 ‘엘리야’와 ‘이세벨’의 대조를 통해서 「열왕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외부 세력에 의존하며 국력을 키우려는 외교 정책입니다. 이것이 이방의 우상 숭배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난 ‘므낫세’ 이야기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열왕기」는 우상 숭배의 문제를 종교적 문제로 끝내지 않고 폭력의 문제와도 연결합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은 ‘므낫세’가 ‘무죄한 사람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렸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열왕기상 21장」에 나타난 ‘나봇의 포도원 사건’과 연결됩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아합’은 피해자에 가깝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서 ‘아합’은 계속 전전긍긍하며 슬퍼할 뿐입니다. ‘나봇’의 포도원이 갖고 싶어서 전전긍긍하고, 포도원을 가진 이후에는 ‘엘리야’의 선포를 듣고 또 전전긍긍합니다.

‘아합’의 뒤에서 포도원을 차지하도록 이끈 사람은 이방 여인이자 바알 제의를 가져온 ‘이세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열왕기상 21장 23-24절」은 ‘이세벨’에 대한 심판 선언이 나타납니다.

남왕국 ‘므낫세’의 이야기가 잘못된 종교 제의를 택했다는 점만 보여주고 있다면,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그 종교가 유입되는 과정에 이방 국가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죄의 근원은 이방 민족과의 연합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열왕기 역사가 집단이 살았던 바벨론 포로기 직전 남왕국은 어느 나라에 의존해야 할지를 두고 많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이라는 세 강국 중 어디에 의존할지를 놓고 집단이 나뉘어 다투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예레미야」나 「에스겔」의 예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열왕기 역사가 집단은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존하는 정책을 주장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집트는 약간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독립 국가 형태를 지지합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야’ 설화와 그곳에 첨가된 ‘이세벨’ 이야기는 몇 차례에 걸친 편집 작업을 거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가 첨가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집중하고 있는 바벨론 포로기 전후에 기록된 역사서 속에서 ‘엘리야’와 ‘이세벨’ 이야기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신앙을 강조하기 위해 편집되었고, 그런 의미 속에서 ‘엘리야’와 ‘이세벨’을 극단적으로 대치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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