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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한다” - 自矜者不長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24
이병일 | 승인 2018.06.18 20:50
“꾀하는 사람(발돋움하는 사람)은 똑바로 설 수 없고, 타고 넘는 사람(가랑이를 벌리는 사람)은 다닐 수 없다.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밝히 드러낼 수 없고, 스스로 옳다 하는 사람은 뚜렷하게 나타낼 수 없고, 스스로 정벌하는 사람은 공적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도에 있어서 밥찌꺼기나 군더더기 행동(蛇足)이라고 한다. 만물이 혹시 그것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도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처신하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24장
企者不立, 跨者不行, 自見者不明, 自是者不彰,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24장은 백서본과 갑을본에는 21장 다음에 나옵니다. 노자는 스스로 높아지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서로 잘났다고 자랑하며 떠들어보아야 자기 얼굴이 더 빛나는 것이 아니며, 자기가 옳다고 한껏 목청을 돋우지만 그 주장이 더 돋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드러내려고 까치발로 서는 사람은 오래 서지 못하고, 거들먹거리면서 한껏 가랑이를 크게 벌려 걷는 사람은 멀리 가지 못합니다. 이는 자연의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며, 만물도 그러한 행위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Getty Image

그러므로 도를 지닌 사람은 발돋움하지 않고, 가랑이를 벌려 걷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남을 공격하지 않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도에 있어서 밥찌꺼기나 사족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길 가기
욕심 채우기 바쁜 길
돈(錢)길 사랑길을 찾아 허덕이네

험한 길을 만나면 수행길로 반기고
낮은 길을 만나면 하심으로 가볍게
평탄한 길에서는 기울음 없는 중도의 이치를 배우며
물 길을 만나면 순리를 깨닫고
꽃길을 만나면 청정한 마음을 가꾸네

마음 하나 바꾸면
험한 길도 행복한 꽃길이네.
- 화화당 임향의 “길(道)”

선거철에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후보들은 저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회가 없으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고 징치하려고 합니다. 진정으로 모든 사람과 생명들에게 봉사한다고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까지 남한을 쥐락펴락했던 세력들과 이에 동조한 인민들의 정신적 흐름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와 관련된 모든 일상의 부분에서 우리를 잠식하고 있는 시대의 풍조는 ‘자본주의적 이익의 극대화’입니다. “불의는 참을 수 있으나, 불이익은 절대로 못 참는다.”라는 말처럼 자기만을 위하는 풍조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행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두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배, 그 속에 제자들과 예수님이 타고 있습니다. 그 배는 바람과 파도에 의해서 물이 차게 되었고, 곧 침몰할 지경이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오늘 나와 우리 공동체에도 수시로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마가공동체가 처한 현실이나 오늘날 우리 공동체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논쟁의 중심에는 시대를 좌우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려는 제자들을 위기에 빠뜨린 바람[ἄνεμος]은 단순한 바람이라기보다는 “교훈의 풍조, 사조, 공허”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라면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고, 부정적인 것이라면 풍조[tendency]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거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배에 타고 있으면서 예수님이 가자고 명령한 맞은편으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은 결코 그들만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겸허히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부딪히는 수많은 갈들과 논쟁의 상황에서 선택과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함께 가려고 하는 것을 방해하고 대적하는 바람과 폭풍을 헤치고 몰아치는 파도를 넘어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나의 사고와 아집에 갇혀 있는 예수님, 나의 뜻대로 움직이고 조종할 수 있는 예수님,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예수님, 부활하여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잠든 예수님, 나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나 윤리를 가르쳐 주는 선생으로서의 예수님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내가 알고 있다고 하는 그 예수님이 전혀 다른 예수님일 수도 있고, 우리가 믿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믿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배에 함께 있던 제자들도 여전히 세상의 풍조와 폭풍에 몰려든 파도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는 책망을 들어야 했고, 여전히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때까지도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배반하고 부인하였고,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떨까요?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물며 그 열둘도 그랬는데...... 실망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깨닫고 따라갈 수 있도록 함께 애씁시다. 우리가 선택하고 판단하는 근거로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서 우리와 함께 활동하시는 예수님이 되도록 나를 돌아봅시다.”
- 아병일, 『미친 예수』 (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우리 안에 잠든 예수” 中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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