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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도 백성들의 뜻도 아닌 왕을 세운 사람들이스라엘 역사 알기 ㊲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 승인 2021.06.17 17:07

솔로몬 파벌

지난 글에서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관한 몇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습니다. 혈족에 의한 왕위 계승이 정당했는지의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면, 이들의 왕위 계승은 장자 계승 원칙이 아니었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장자 계승보다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차기 왕위 계승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장자 계승 원칙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솔로몬’의 왕위 계승 방식이 이전과 다르게 이스라엘 지파 연합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선왕의 승인만을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솔로몬’의 왕위 계승이 상당히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진 쿠데타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열왕기상 1장 38-40절」을 보면, ‘솔로몬’의 왕위 등극 이벤트에는 아주 극소수의 인물만이 참여했습니다. 제사장 ‘사독’, 예언자 ‘나단’, 군대 장관 ‘브나야’가 참여하였고, ‘브나야’의 관할 지역이었던 그렛과 블렛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름이 나타난 인물들은 ‘솔로몬’ 파벌에 속하는 이들이었고 그렛과 블렛 사람은 아마도 ‘브나야’가 데려온 군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왕위 등극 이후 ‘솔로몬’ 파벌에 속했던 인물들은 고위 관리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의 표에 나타난 목록은 「사무엘하 8장 16-18절」과 「사무엘하 20장 23-26절」, 「열왕기상 4장 2-6절」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솔로몬’ 때에 관료 직책이 왜 이렇게 늘어났는가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겠습니다만, 고위 관리의 직책 자체는 ‘다윗’ 때와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때때로 ‘솔로몬’ 시절에 행정 체제의 기틀이 잡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무엘」과 「열왕기」에 따르면 행정 기반은 ‘다윗’ 때에 수립됩니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이런 관리들의 직책이 ‘다윗’이나 ‘솔로몬’ 둘 중 언제 시작했냐는 부분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는 이런 직책이 없었고 후대에 생겨난 관리들의 직책이 ‘다윗’과 ‘솔로몬’ 시절에 반영되어 나타났다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전에 서기관과 사관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알기 ⑼ ‘서기관 사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에서는 서기관의 역할이 분열 왕국 후기에 확장된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왕국 내에 있는 세부 직책들이 후대의 직책들과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기관이나 사관의 역할은 「열왕기」 안에서도 점점 확대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이 없던 시절의 제사장과 성전이 생겨난 이후의 제사장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들을 부르는 호칭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무엘」과 「열왕기」가 기록된 때에 부르던 직책의 명칭이 주전 10세기경 초기 왕정 시대에도 똑같이 사용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예가 제사장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서 보았을 때, 일반적인 제사장과 특정 제사장은 구분되어 나타나는데, 일반 제사장이 ‘코헨(כהן)’이라면 특정 제사장은 정관사가 붙어서 ‘하코헨(הכהן)’이 쓰입니다. 대제사장이라고 할 때는 ‘하코헨 하가돌(הכהן הגדול)’ 또는 ‘하코헨 하로시(הכהן הראשׁ)’가 쓰입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직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따진다면 조금 복잡해질 수 있겠지만,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출애굽기」 이후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하코헨’은 제사장의 우두머리 격에 속하는 사람에게 붙어서 나타납니다. ‘아론’이 ‘하코헨’이었고, ‘아론’이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하코헨’이었습니다.

이런 구분은 몇몇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명기 18장 1절」에서 일반적인 ‘레위 사람 제사장’을 표현할 때 ‘코헨’이 사용됩니다. 「사사기 17장」에서 ‘미가’가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할 때는 ‘코헨’이 사용됩니다. 가장 뚜렷한 구분을 보여주는 곳은 「사무엘상 1장」인데 ‘엘리’는 ‘하코헨’으로 표현되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코헨’으로 표현됩니다. 히브리어 ‘헤(ה)’가 정관사 ‘그’로 번역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이런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사무엘」과 「열왕기」는 확실하게 ‘코헨’과 ‘하코헨’을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마치 ‘하코헨’이 제사장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사무엘상 2장 35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충실한 제사장’을 세우시고 그 집안이 영원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 계보를 잇고 있는 이들이 ‘하코헨’으로 불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을 깨뜨리는 상황, ‘하코헨’을 제사장 집단의 우두머리라거나 제사장 계보를 잇는 특정 인물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도 나타납니다. 다윗 때에 두 사람의 ‘하코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하」는 ‘사독’과 ‘아비아달’ 두 사람에게 ‘하코헨’이라는 명칭이 붙여 놓습니다. 

‘하코헨’이 제사장 집단의 수장격인 인물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면 두 사람의 수장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는 있습니다. 이는 결국 ‘솔로몬’의 왕위 계승 때에 정치 다툼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이 대제사장과 같이 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호칭이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하코헨’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긴 쉽지 않습니다.

위의 표를 보면 ‘다윗’ 시절 제사장의 자리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 있었는데, 이때 제사장은 ‘코헨’의 복수형인 ‘코하님(כהנים)’이 사용됩니다. 두 사람의 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에게 ‘하코헨’을 붙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문법적인 문제 때문이었는지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제사장으로 표기됩니다. 하지만 이 둘은 다른 제사장들과는 확실하게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솔로몬’의 관료 명단에서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하코헨’으로 표기됩니다. ‘나단’의 아들 ‘사붓’은 ‘코헨’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하코헨’과 ‘코헨’이 분명하게 구분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또 ‘코헨’이 정확하게 어떤 인물들이었는지도 애매합니다. 제사 만을 지내는 사람들이었는지, 하나님과 백성들의 중계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인지도 모호합니다.

하지만 확실한 점도 있습니다. 「사무엘」과 「열왕기」를 기록한 집단은 ‘하코헨’이라는 명칭을 통해서 정통 제사장 계보를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론’으로부터 이어진 정통 제사장 계보는 ‘다윗’ 때에 두 인물에 의해 계파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솔로몬’ 때에 이르러 ‘사독’과 그의 아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반대로 왕위 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제사장 ‘아비아달’과 그의 계열은 ‘하코헨’의 지위를 잃게 되었고, 이는 ‘엘리’ 집안의 실패로까지 연결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 Cornelis de Vos,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는 사독」 (1630)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플랑드르의 화가 코넬리 데 보스(Cornelis de Vos)가 1630년에 그린 ‘솔로몬의 왕위 등극’입니다. 뿔을 들고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인물이 제사장 ‘사독’으로 보이고, 뒤에 월계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예언자 ‘나단’일 것입니다.

‘솔로몬’의 관리 목록 중에 제사장에 ‘아비아달’이 들어가 있는 점은 그의 추방 이전 목록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역사가의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아비아달’과 그의 자손은 일반 ‘코헨’으로 격하시키고 ‘사독’ 자손을 ‘하코헨’의 위치에 올리기 위한 역사가의 장치라고 봅니다.

‘사독’ 계열 제사장 계보에 관해서는 지난 글인 「이스라엘 역사 알기 ⑻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과 대제사장 힐기야’」를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관리 명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점은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첫째는 예언자 ‘나단’의 위치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나단’의 출신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예언자 ‘나단’도 ‘사독’과 마찬가지로 「사무엘하 7장」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7장」이 진술하고 있는 상황을 보았을 때, ‘나단’은 궁에서 일하던 왕실 예언자로 보입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놓고 고민하며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나단’은 가까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12장」에서는 ‘나단’이 ‘다윗’의 궁전 밖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나타납니다. 이는 그가 왕실 밖에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순간에 그는 왕실과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 Matthias Scheits, 「다윗과 나단」 (1672) ⓒ위키피디아

위의 그림은 독일 화가인 마티아스 샤이츠(Matthias Scheits)가 1672년에 그린 ‘다윗에게 조언하는 예언자 나단’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이후에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지방 장관이 되고 ‘사붓’이 제사장이 되는데, ‘사붓’은 ‘왕의 벗’이라는 표현이 첨가됩니다. 예언자 ‘나단’의 집안과 ‘솔로몬’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관리 목록에 ‘나단’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왕실 예언자라는 직책도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레미야 28장」에 나타난 ‘하나냐’와 같은 인물을 보면서 ‘왕실 예언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왕실 예언자라는 직책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이들이 왕궁에 상주하고 있었는지, 때로 예언을 전하기 위해 왕실에 출입했던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적어도 「사무엘」과 「열왕기」는 이런 직책에 대해 침묵합니다.

둘째로 누가 제사장의 역할을 수행했는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시절 ‘나단’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 됩니다. 성경에는 ‘나단’이 레위인이었다는 정보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들 ‘사붓’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다윗’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개역 성경은 「역대기」의 진술에 따라 ‘다윗’의 아들들이 ‘대신(ראשׁון)’이 되었다고 번역해놓았는데, 「사무엘하 8장」의 히브리어 본문은 그들이 ‘코헨’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솔로몬’ 때에 출신 기록이 나타나지 않은 ‘나단’의 아들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점과 ‘다윗’ 때의 관리 목록에서 ‘다윗’의 아들들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진술을 본다면, 초기 왕정 시기 제사장은 레위인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생각해본 바와 마찬가지로 이들이 ‘제사장’이라는 직책을 맡아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셋째로 이 목록을 통해 혈통에 의한 왕위 세습과 함께 혈통에 따른 고위직의 세습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왕위 등극을 도왔던 인물인 제사장 ‘사독’과 예언자 ‘나단’은 국가의 요직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은 그들의 자녀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역사의 반복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데, ‘솔로몬’의 왕위 등극을 도왔던 이들은 국가 요직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들이 몰아낸 ‘요압’과 ‘아비아달’은 ‘사울’ 시기부터 ‘다윗’과 함께 하며 도왔던 인물들입니다.

반면에 ‘사독’, ‘나단’, ‘브나야’와 같은 인물은 ‘다윗’이 시온성을 차지하고 그곳에 다윗성을 건축한 이후에 나타난 인물들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다윗’과 함께 했던 세력이 물러나게 되고 새로운 세력이 권력을 잡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보면 ‘르호보암’이 북쪽 지파들의 요청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관한 진술이 나타나는데, 이때 ‘르호보암’은 ‘솔로몬’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의 의견은 무시하고 자신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을 따릅니다. 과거 ‘다윗’과 함께했던 세력을 몰아내고 ‘솔로몬’과 함께 권력을 잡았던 이들이 한 세대 후인 ‘르호보암’ 때에 다시 새로운 젊은 세력에 의해 권력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는 이들을 그저 ‘노인’이라고 표현하고 있기에 그들이 ‘솔로몬’과 함께 권력을 잡은 집단이라는 인상이 약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누군가에게 빼앗은 권력을 또다시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역사의 반복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장된 행정 체계

‘솔로몬’ 시절에는 ‘다윗’ 때에 볼 수 없었던 관리들의 명단도 나타납니다. 「열왕기상 4장 7-19절」에는 ‘솔로몬’이 세운 12지방 관장의 목록이 나타납니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명단 자체에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목록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도 왜 ‘솔로몬’ 시절에 이런 직책이 생겨났다고 「열왕기」가 기술하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7절」과 「열왕기상 4장 27절」을 봤을 때, 12지방 관장의 역할은 왕실에 식량을 공급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열왕기상 4장 28절」에 따라 말에게 먹일 보리와 꼴을 제공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은 각자 1년에 한 달씩 돌아가며 왕실에 식량을 공급하였다고 말하는데,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식량을 마련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이 각 지방에서 세금을 걷기 위해 파견된 인물들이었던 것인지, 각 지역의 행정을 돌보며 왕실에 공물을 올리던 인물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열왕기상 4장 21절」에 나타난 ‘솔로몬’이 다스린 모든 나라가 조공을 바쳐 섬겼다는 진술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다윗’과 ‘솔로몬’이 국가에 끼친 영향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역할도 합니다.

‘다윗’의 경우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사무엘하 8장 1-6절」에는 ‘다윗’이 이웃 국가를 쳐서 점령하였다는 진술 뒤에 그 지역에서 조공을 바쳤다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사무엘하 8장 7-13절」은 다윗이 승리한 지역에서 물품을 빼앗아 왔다고 말합니다. 이런 진술은 ‘다윗’ 시절에는 이웃 국가로부터 안정적으로 조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침략과 약탈이 이어졌다는 인상을 줍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대대적인 영토 확장 전쟁을 수행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 ‘다윗’이 차지해놓은 지역에 행정 관원을 두고 그곳에서 안정적인 조공을 받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사무엘하 8장 6절」에서 ‘다윗’이 점령한 지역에 수비대를 두고 조공을 받았다는 기록을 본다면, 이웃 국가로부터 조공을 받는 일이 ‘솔로몬’ 때에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다윗’과 ‘솔로몬’의 영토 확장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면, 조공을 받기 시작한 왕은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약탈은 단기간에 국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요긴한 수단이긴 하지만, 장기간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닙니다.

물론 ‘다윗’이 중국 고대 역사서인 「십팔사략」에 등장하는 ‘치우’처럼 내정은 뒷전으로 하고 약탈을 통한 재정 확보만을 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전쟁을 치룬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의 국가 체계를 이루어가려던 시기에 오직 약탈을 통한 재원 확보만이 국가 방침이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사무엘」과 「열왕기」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이야기를 혼합시킨 다음에 영토 확장은 ‘다윗’에게 돌리고 안정적인 행정 체계 확립은 ‘솔로몬’에게 돌리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글에서 잠시 살펴보았던 재판 능력이 떨어지는 ‘다윗’과 재판에 능한 ‘솔로몬’의 대비와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이 얼마나 역사적 사실과 가까운지 알 수 없습니다만, 「사무엘」과 「열왕기」는 초기 왕정 시대 두 왕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단일 국가가 수립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행적에 관한 전승들은 때로 섞이기도 하고 다른 왕에게 돌려지기도 한다고 봅니다.

즉 주전 10세기경 ‘다윗’과 ‘솔로몬’의 행적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말하기란 쉽지 않으며, 이 둘의 통치 기간이 똑같이 40년씩이라는 점도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울’을 포함한 약 100년의 기간 동안 세 사람의 왕이 어떤 형태로든 단일화된 왕국을 통치했고, 그 왕국이 하나의 국가 체계와 행정 체계를 이루어가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성훈 목사(한신대 구약학 박사과정)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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