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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예배, 거룩한 생활<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⑮-2> 출애굽기 12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4.21 11:38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다섯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 설교힌트

1) 쓴 나물 쓴 떡 - 인생의 맛이 쓸 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감탄고토 甘呑苦吐)는 말이 있다. 그 처신이 새털처럼 가벼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마 이는 약삭빠르거나 이해타산에 밝은 사람이 자신의 이익만 쫒아가는 처신을 풍자한 말일 것이다.

성경은 여러 곳에 쓴 감정, 쓴 마음, 쓴 일을 믿음과 소망에 기초하여 넘어선 사람들을 소개한다. 세상의 뜨거운 맛, 쓴 맛, 딱딱하게 마른 떡(빵)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의 끊을 놓지 않았다. 요셉에서부터 시작하여 다니엘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그리고 2천여 년 교회 역사에는 그 숫자를 이루 다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런 사람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에게 최후의 승리를 선물로 안겨주셨다.

2) 거룩한 예배, 거룩한 생활

이 세상에는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는 운동이나 사상이 아주 참으로 많다. 그 방법(길)과 근거도 가지각색이다. 반드시 기독교가 아니라도 그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많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인간해방의 특징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인간해방 (역사해방)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하나님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태도, 곧 거룩한 생활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성경적인 인간해방의 특징이다.

이로써 인간해방의 목표에 개인이든 집단이든 도달한 다음이라도 기독교는 해방의 이데올로기가 현상유지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하지 않는 힘을 얻는다. 이 목표에 도달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해서 되새김으로써 거기에 참여한 사람만의 잔치,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경에는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실 때,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종노릇하던 시절을 기억하라는 말씀을 덧붙이곤 하셨다. 그들은 인간해방, 역사해방의 원동력이 하나님이셨음을 늘 되풀이 기억하고 회상하며 기념하였다. 곧 예배를 드림으로써 그들은 역사적인 해방의 경험을 역사의 열매로, 개인적인 구원의 경험을 성령의 열매로 끊임없이 이어가고자 하였던 것이다.

출애굽기에 따르면(25-40장), 출애굽한 해방공동체의 목표는 예배공동체로 세워지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람이나 공동체는 해방(구원) 이전이나 이후에나 한결같이 예배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이럴 때에서야 비로소 집단이기주의를 뛰어넘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방공동체(구원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다.

3) 누룩의 부정적인 기능과 긍정적인 역할

성경에는 누룩이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대부분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구약성경에 누룩이 타락이나 부패를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 경우가 없다. 이런 해석이 등장한 것은 아마 후기 유대교였으리라. 이를테면 랍비 알렉산드리가 주전 3세기에 쓴 기도문이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주님, 저희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채워드리고자 갈망하는 것을 잘 아시리라 믿나이다. 하오나 저희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이옵니까? 저 오래된 가루 속의 누룩들이 ...” 이런 전통에서 예수님은 사람 안에서 악한 행위를 하도록 끊임없이 꼬드기는 충동요인을 누룩이라 표현하셨다: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 16:6; 참조 막 8:15; 눅 12:1).

하나님은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고전 5:7-8; 참조 갈 5:9) 고 말씀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죄와 짝지어 사는 대신에 하나님과 그분 말씀을 가까이 하며 성결하게 살라는 뜻이다.

이제 긍정적인 용례를 살펴보자. 우선 소극적인 의미이다. 곧 출애굽한 공동체는 출애굽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고 기념하는 수단으로 먹은 누룩이 들지 않은 떡(빵)을 먹었다. 둘째로 적극적인 의미이다. 어떤 신앙(긍정적인 사상이나 활동)이 한 사람, 한 그룹을 초월하여 커다란 활력을 얻어 널리 퍼져가는 것을 가리킨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마 13:33 = 눅 13:21)

4) 해방의 날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생활

8.15 전후의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자. 8.15광복절을 맞으며, 가장 후회할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일제 식민지 통치 기간 내내 굴복하지 않고 지내다가 그보다 1-2년 전에 친일활동을 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30년 넘게 고생 고생하며 참아오다가, 불과 1-2년을 참지 못해 친일활동의 막차를 탔다. 그 결과 우리 민족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겼다.

신앙적 의미로 볼 때, 유월절과 무교절은 고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견뎌내자는 것이다. 비록 그 날이 몇 달 1-2년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기에. 이런 뜻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은 이집트에서 겪은 고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은총, 곧 구원과 해방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집트인에게는 악몽과 재앙의 날,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구원과 해방을 준비하는 이 정신은 나중에 예언자들의 입술을 통해 ‘여호와의 날’로 선포되었다.

비록 그 날과 그 시를 모르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날이 어느 날 갑자기 도둑같이 임할 것이라 하였다. (살전 5:2,4; 벧후 3:10; 계 3:3; 16:15; 마 24:43 = 눅 12:39) 이럴 때 평소에 준비하고 대비해오던 사람도 놀라기 마련인데, 하물며 방심하고 방관하던 사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5) 오늘, 해방과 구속을 실현하라

   
 
유월절에 관한 말씀은 대대로 “이 날을 기념하여” 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원리가
예언자에게 또 예수님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 22:19) 물론 여기서 ‘기억 (기념)이란 말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지난날 일어났던 사건을 잊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속에 들어있는 신앙의 원리, 생활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되살려내며, 생활로 이어가는 일이다.

23 ...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3-26)

6) 이집트 생활로 되돌아 가지 말라

이스라엘에게 이집트는 억압과 구속과 노예의 자리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여유있게 떡을 만들어 먹을 수 없었다. 그 떡은 제 맛을 낼 정도로 숙성시키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은 고난의 떡이었다: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신 16:3)

이런 의미에서 신명기는 이스라엘에서 왕이 된 자가 해야 할 일들 가운데 하나는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행 7:34)고 말씀하셨다. 오늘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옛날 조상들이 이런 고난과 시절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식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양육한 덕분이다. 그 후손은 조상들이 먹었던 것과 같은 음식을 일부러 찾아 먹으며, 그 은덕을 기리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이집트는 단순히 국가(지리와 영토)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정신세계(가치관과 신앙), 문화와 풍습 등을 모두다 내포하는 말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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