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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주어진 달력(유월절)<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⑭-1> 출애굽기 12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3.17 11:33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 네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출애굽기 12장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유월절(1-14절),
② 무교절(15-20절),
③ 유월절에 관한 말씀의 전달과 순종(21-28절),
④ 열한 번째 표적(29-42절),
⑤ 유월절에 관한 명령 열 가지(43-51절).

그 가운데 출 12:1-14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을 내리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특정한 날과 달을 말씀하셨다. 본문은 “그리고 여호와가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이집트 땅에서 다음과 같이.” (출 12:1)라고 말문을 여셨다. ‘모세에게 그리고 아론에게’ 라 하며 전치사 (la,)이 두 번 되풀이 쓰였다. (출 6:13; 7:8; 9:8 참조)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조해 말씀하신 곳은 이집트 땅이다.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독자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 것은 아마 이집트 땅에서 이미 유월절과 무교절 등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밝힘으로 이 절기들의 유래를 분명히 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명사문장으로 된 2절은 이스라엘에게 생긴 기념일(새로운 달력)에 관해 상반절과 하반절에서 두 차례 전해준다. 파라오의 계획과 일정에 따라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달력과 날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기일과 날짜와 연도(창 1:14)가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파라오나 이집트 국민에게는 기념일, 특별한 날이 중요하겠지만, 히브리 노예에게는 그런 날을 기억하는 것조차 사치였을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정이 달라졌다. 이제는 이들에게도 고유한 달력과 날자가 생긴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기점으로 한 해의 시작을 정하라고 하셨다(출 12:1). 곧 출애굽 사건이 일어난 달이 이스라엘 민족에는 새해 첫 달(정월)인 것이다. 이는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마치 예수님 탄생을 기하여 기원전(주전 before Christ era = BCE)과 기원후(주후)로 나뉘듯이. 출애굽이 시작된 이 달(하코데쉬 핫제)이 전 해와 새해를 나누는 기준이 된 것이다. 2절에는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머리(시작)이다” 라고 되어 있다. 이는 순서로 볼 때 첫 번째 라는 뜻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달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최승정, 탈출기 I, 284쪽) 그 당시 달력으로 이 시기가 7월이요, 오늘날의 달력으로는 3-4월이다. 출애굽 이후 그 이름이 아빕월(출 13:4; 23:15)이었다가, 바빌론포로 이후에 페르시아의 영향 아래 니산월(출 34:18; 신 16:1; 느 2:1; 에 3:7)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하여 출 12:2에는 ‘너희에게’(라켐) 란 인칭대명사가 두 번 연거푸 쓰였다. (개역개정은 한번만 옮김) 여기서 주목할 표현은 로쉬 코다쉼(~yvid"x\ varo)이다. 개역개정(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 표준(한 해의 첫째 달), 공개(한 해의 첫 달), 천새(첫째 달, 한 해를 시작하는 달) 등 우리말 성경은 로쉬를 시작(출발점)이란 뜻으로 옮겼다. 물론 이것도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해석은 이 말에 담긴 뜻, 곧 모든 달 중에서 가장 높고, 가장 우선하는 달이란 뉘앙스를 살려내지 못한 단점이 있다(신 33:15; 삼하 22:44; 욥 22:12 참조). 곧 해방 원년(元年)이 시작된 이 달은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이란 말이다(Uzschneider, Exodus 1-15. 247쪽).

   
▲ 니산월을 상징하는 12궁도의 모자이크, 갈릴리의 디베랴의 함맛(주후 4세기)

바빌론 포로 이전에 이스라엘은 첫째 달 둘째 달 ... 식으로 쓰거나 고유한 이름을 붙인 달력을 사용하였다. 그 이름들 중에는 가나안의 달력과 일치하거나 비슷한 것이 많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아빕 (= 첫째 달) 출 13:4; 23:15; 34:18; 신 16:1
지우 (= 둘째 달) 왕상 6:1, 37
에타님 (= 일곱째 달) 왕상 8:2
(= 여덟째 달) 왕상 6:38

이 가운데 아빕 달은 항상 코데쉬와 함께 쓰였다.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스가랴서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은 바빌론 포로 뒤에 바빌론식 이름을 지닌 달력을 썼던 것 같다. (H. A. Mertens, Hanbuch der Bibelkunde, 1984. 762-763쪽; 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출애굽기, 국제제자훈련원, 2012. 214쪽; 최승정, 탈출기 I, 2013. 338-340)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웃집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출 12:3~4)

출 12:3에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는 말로 이스라엘 자손 대신에 ‘이스라엘 온 회중(콜 아다트 이스라엘)’이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출 12:3) 여기서 회중을 가리키는 말은 ‘에다’ (hd'[e)이다. 이것은 이제까지 쓰이지 않던 새로운 낱말이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족(부족)에서 민족으로 발전한 것을 가리키기는 한편,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 안에 있는 민족임을 나타낸다. 6절에는 우리말로 회중이라 번역되는 낱말은 이것과 카할 (lh'q')이 있다(콜 케할 아드트 이스라엘). 이는 이스라엘 온 회중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양을 잡으러 나온 백성(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 콜(모두)란 부사가 붙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양을 잡기를 바라는 심정이 표출된 것이다. 이 카할이 칠십인역성경에는 교회를 가리키는 에클레시아 (evkklhsi,a)로 번역되었다. 이 행사가 어떤 이유로 그 달 ‘열흘’부터 시작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와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예를 들자면, 여호수아와 그 일행이 요단강을 건넌 때가 아빕월 10일이었다. (수 4:19)

어린 양(hf, )은 5절에서 언급되듯이 유월절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LXX은 pro,baton으로 옮김). 이것은 일년생 수컷으로 흠이 없는 것이라야 한다. 흠이 없다는 말(타밈)은 단순히 결점이 없다는 소극적인 뜻보다는 온전한, 완성된, 고상한 등 적극적인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다(히 9:14; 벧전 1:19). 취하다란 말(라카흐)도 여기서는 선택(선별)하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사도 요한(요 1:29)과 사도 바울(고전 5:7)은 예수님의 희생을 유월절에 바치는 양에 비유하였는데, 성경은 이 양을 여러 곳에서 조금씩 다른 뉘앙스로 언급하였다.

...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hf,)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 der Heilige Geist Hospital in Luebeck
나는 끌려서 도살당하러 가는 순한 어린 양(케베스 fb,K,, LXX avrni,on) 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 (렘 11:29)

...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avrni,on)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 5:8)

이 양을 이스라엘 회중은 4일 동안(10-14일) 잘 간수해야 한다(6절). 이는 어린 양을 데리고 있으면서 먹이만 주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바칠 것이므로 최대한 정성껏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특별하신 분 여호와께 특별한 날에 특별히 바쳐야 할 예물이므로 처음부터 끝가지 특별한 마음으로 돌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회중은 그 양을 잡아서 그 피에서 (일부를) 취하여야 한다. 그것을 그들은 양들을 잡아먹는 그 집의 좌우 문기둥들과 문 위의 가로 횡대에 발라야한다 (7절). 이는 그 집 대문에 표시를 해놓는 것이다. 대문은 그 집 자체를 가리키는 상징이었다(제유법. 출 20:10; 신 5:14; 12:7 등 참조). 곧 이 집 출입구에 바르는 그 피는 이 집 전체에 그리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출 12:8에서 하나님은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 (직역: 그리고 그들은 이날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교병과 함께 쓴 나물을 먹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요즈음 사회에서는 잘 쓰지 않는 말인 무교병(맛초트 tCom;)은 발효되지 않은 떡,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떡이다. 쌀가루(또는 밀가루)에 누룩을 넣고 반죽하여 짧게는 2-3일, 길게는 5-6일 비교적 따뜻한 곳에 놓아두면, 그 반죽이 발효된다. 이렇게 재대로 반죽된 떡(빵)이라야 제 맛이 난다. 이렇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략하고 채 발효가 되지 않은 채 떡을 만들어 먹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촉박하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도 누룩 없는 떡을 바치는 경우가 있다(출 28:13; 레 2:11; 6:14-18). 이럴 경우에는 흠 없는 예물을 드리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고전 5:6-8).

이것을 먹을 때, 쓴 나물도 같이 먹었다. 이는 쓴 맛이란 말(마로르)에서 나왔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겪었던 쓴맛 나는 생활을 회상하는 도구였다. 더 나아가 이것과 무교병은 그들이 겪은 쓰라린 생활, 고난에 찬 삶을 가리키는 표시인 것이다. 신명기는 무교병을 가리켜 ‘고난의 떡’이라 부르기도 하였다(신 16:3). 나중에 그들은 광야 마라지역에서 쓴 샘물을 보고 불평하였다(출 15:22-26).

특히 고기는 삶거나 날로 먹지 말고 불에 구워먹어야 하였다. 9절을 직역하면 "너희는 고기 중 어느 것도 일체 날 것으로 또는 물에 삶아서 먹지 말아야 할지니라. 오히려 그 머리를 그 양 다리와 그 내장을 불에 구워야 (하리라)." 이다. 여기 개역개정이 생략한 키 임 (~ai-yKi)은 부정어와 어우러져 '...하지 말고(않고), 오히려 ... 하다'는 뜻이다. 10절에도 그 내용이 이어진다. 밤부터 아침까지 할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출 12:8-10은 다음과 같이 짜여있다(Dozeman, 267쪽):

가. 밤 시간 (먹는 시간)
      나. 하나님의 지시 - 무교병을 쓴나물과 함께 먹을 것
            다. 금지 - 날 것 또는 삶은 것으로 먹지 말 것
      나‘ 하나님의 짓 - 머리, 다리, 내장 등 모든 부위를 다 구울 것
가‘ 아침시간(뒤 처리하는 시간)

출 8:10에는 그 음식을 아침까지 남겨놓지 말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제사장 임직예식(출 29:34), 화목제(레 17:15)에 바쳐진 제물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서원제나 자원제의 제물의 경우에는 하루 더 그 기간이 연장되었을 뿐이다. (레 7:16-18) 흔히 광야의 식탁이라 부르는 만나도 그 다음날 아침이 되기 전에 다 먹어야만 하였다. (출 16:19-20, 23-24) 얼핏 이해하기 힘든 이 규정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은 서로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독차지하고 쟁여놓고 먹기보다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 하나도 남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과 같이 먹어야 한다. 남겨두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기에. 그러니 이웃 및 나그네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말씀에 순종도 하고 인심도 얻는 길이었다. 하나님은 이런 강제 조항을 통해서 오히려 공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음식을 먹는 자세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셨다(웨카카 토클루 오토 = 그리고 다음과 같이 너희는 그것을 먹어야 하리라). 허리띠를 두르고 신발을 신고 지팡이를 손에 잡은 채 그 음식을 먹으라고 하셨다(11절). 여기서 (허리띠를) 띠다는 말(하가르)도 수동분사형으로 나오고는 등 모두 동사없는 문장(명사문장)이다. 곧 음식먹는 자세를 언급한 것 전체가 명사문장이다. 그 뉘앙스를 살려 이 부분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너희 허리 양쪽이 묶여진 채로
너희 신발들이 너희 두 발에 있는 채로
그리고 너희 지팡이가 너희 손에 있는 채로

이처럼 식사와 복장에 관한 언급이 매우 눈에 띤다. 특히 그 끝이 2인칭 복수 소유격어미, 켐(모트네켐) 임(하구림) 켐(나알레켐) 켐(뻬라글레켐) 켐(오르막켈켐) 켐(뻬드예켐) 으로 끝나면서 묘한 공명음을 내고 있다. 이로써 음식을 먹는 도중에라도 언제든지 길 떠날 수 있게 준비한 것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사도 바울도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만반의 준비태세로 있으라고 성도에게 권면하였다. (엡 6:13-17):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만일 11절 마지막 부분 “그것이 여호와의 유월절 (페사흐) 이니라”에서 진치사 l. ()의 의미를 살려 직역한다면, “그것이 여호와를 위한 유월절이니라” 로 된다. 신앙생활에서는 여호와를 위한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며,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진심으로 여호와를 섬긴다는 점에서 이 본문은 어떻게 해석하든 문제가 없다.

이런 유월절 행사는 광야에서(민 9장), 가나안 진입 뒤(수 5:10), 히스기야왕의 개혁 시절(대하 30장), 요시야왕 시대(대하 35장), 바빌론 포로 이후(스 6:19) 등에 거행되었다. 예수님도 잡히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이 절기에 맞추어 하셨다. 물론 여기 나오는 i) 열흘째 되는 날 어린 양을 잡는 것, ii)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것, iii) 급하게 먹는 것 등은 첫 번째 유월절에만 지켜졌다(신 16:1-8).

12-14절에 이 유월절의 내용이 더 자세히 나와 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에게는 여호와를 만나는 것이 복이다(시 11:7; 22:24; 119:135; 143:7; 고전 13:12; 계 22:4-5).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 여호와를 만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재앙이다(출 3:6; 33:20, 23; 시 51:9 참조). 이런 뜻에서 여호와께서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인에게 나타나신 일이 그들에게 크나큰 재앙이 되었다. 그 내용이 12절에 나와 있다. 곧 여호와께서 사람이든 짐승(가축)이든 그 나라 안에서 있는 처음 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진멸하신다는 것이다. 12-13절의 ‘치다’란 말(나카)은 구약성경에 500여 번 나오고, 그 대부분이 히필형으로 쓰였다(480번). 이것은 기본적으로 때리는 것을 가리킨다(출 2:11, 13; 신 25:11; 느 13:25; 아 6:7 등).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경우 일부러 혹은 의식하지 못하면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을 뜻한다(신 2:23; 수 10:26; 삼하 17:35; 욜 4:7 등). 대부분의 성경은 이 낱말을 ‘치다’로 옮겼지만, 몇몇 성경은 죽이다로 번역하였다(LB, EIN, ELB 등). 12절과 아주 비슷하게 언급된 출 11:5에는 죽이다는 낱말(무트 twm)이 쓰였다.

이에 더하여 여호와는 이집트의 모든 신을 다 심판하실 것이다(출 12:12b).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축까지, 그리고 각종 우상까지 여호와의 심판에 포함되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여호와를 모든 우상에 대한 심판자로 묘사하였다(민 33:4; 시 89:6; 95:3; 97:7, 9; 렘 46:25; 미 4:1 등).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심판과 징벌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를 분명히 하시려고, 12절은 그 마지막을 ‘나는 여호와라’ (아니 야ㅎ웨). 이는 앞의 내용을 보증하는 일종의 도장(사인)이다.

13절에는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이유가 나와 있다(그리고 그 피가 너희의 집에 대한 너희를 위한 표적이 되리라. 그리고 내가 그 피를 볼 것이다. 그리고 너희 위로 넘어가리라. 그리고 너희를 너희에게 멸망을 향한 재앙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칠 때.). 성경은 이를 표적(오트)이라 부른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집트에 내리는 멸망을 향한 재앙(네게프 레마쉬키트 tyxiv.m;l. @g<n< )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지켜주는 표시인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와 그분의 뜻 및 능력을 알려주는 통로이다. 무지개(창 9장), 할례(창 17장) 등이 그러하듯이.

이 사건을 이스라엘 민족은 대대로 기념하며 지켜야 하는 것이다(14절): “그리고 이 날은 너희에게(너희를 위한) 기념일이 되리라.” 기념일이란 말(직카론 !ArK'zI)은 기억하다, 생각하다는 말에서 왔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가족을 기억하시자, 그 때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하였다(창 8: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탄원을 들으시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자, 출애굽이 시작되었다(출 2:24). 자신의 몸이 병들어 시한부 인생이 되자 히스기야왕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기억해 주시기를 기도드렸다(왕하 20:3). 기억, 이것은 유월절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이 날을 명절[여호와의 절기 또는 여호와를 위한 절기 출 13:6; 32:5; 레 23:41; 민 29:12]로 경축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을 너희 세대 대대의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여호와의 절기로 경축하라.” (11b-c 직역) 여기 나오는 절기란 말(카그 gx;)과 지키다, 경축하다는 말(카가그 ggx)은 이스라엘 민족의 특별한 절기와 관련이 있다. 구약성경에 61번 나오는 카그는 이스라엘 중요 절기에 연관되어 있다. 그것은 초막절(수장절, 20번, 유월절(또는 무교절,  11번, 그리고 칠칠절(1번)에 쓰였으며, 그 밖에도 이런 절기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이 말의 동사형 카가그도 구약성경에 16번 나온다. 그 대부분이 유월절(무교절), 초막절(수장절), 칠칠절에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개역개정에는 지킨다는 뜻으로 옮겨졌다. 이 낱말은 (절기를) 지키다, (명절을) 쇠다, (축전을) 경축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삼상 30:16은 이것을 춤추다로 옮겼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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