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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과 예(禮)라고 하는 것은” - 夫禮者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38
이병일 | 승인 2018.09.24 19:14
“상덕은 덕이 아니니 이럼으로써 덕이 있었다. 하덕은 덕을 잃어버리지 않으니 이럼으로써 덕이 아니다. 상덕은 하려는 것도 없었고 하지 않으려는 것도 없었다(하려는 수단도 없었다). 하덕은 덕을 행하려 하니 행하지 않았다. 상인은 인을 행하려 하고 하려는 수단이 없었다. 상의는 의를 행하려 하고 하려는 수단이 있었다. 상례는 예를 행하려 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팔을 걷어붙이고 예를 잡아당겼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있고, 인을 잃은 후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있게 되었다. 대저 예법은 충성과 믿음이 옅은 것이고 혼란의 시작이다. 미리 헤아리는 것은 화려함이고 어리석음의 시작이다. 이럼으로써 대장부는 두터운 곳에 머무르고 야박하게 살지 않으며, 실하게 머무르고 화려하게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노자, 『도덕경』, 38장
上德不德, 是以有德, 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 無爲而無不(以)爲, 下德, 爲之而有不(以)爲, 上仁, 爲之而無不(以)爲, 上義, 爲之而有不(以)爲, 上禮, 爲之而莫之應, 則攘臂而仍之.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大丈夫, 處其厚, 不居其薄, 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도덕경 1-37장은 도경(道經)이고, 38장부터는 덕경(德經)이 시작됩니다. 덕이라는 것은 체득을 말합니다. 몸에 완전히 숙달이 되어서 버리고자 하여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경이 그러해야 하는 바를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덕경은 세세한 부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것이 체득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上古時代의 덕은 덕을 따로 내세우지 않았지만, 덕이 저절로 갖추어졌습니다. 하덕은 상고시대의 덕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그 속에 인위적인 수단이 있습니다. 하덕은 밖으로는 덕을 잃지 않지만, 덕이 없습니다. 상덕은 하려는 것이 없고 하려는 수단도 없었습니다. 하덕은 덕을 행하려 하니 하려는 수단이 있습니다.

상인은 인을 행하여 어질기만 하고 아직 형벌 등의 수단이 없었습니다. 상의는 의를 행하려 하는데, 덕이 쇠하여 인으로 잘 다스려지지 않아서 의와 불의를 세워 상과 벌을 주게 되었습니다. 상례는 예를 행하려 하지만 이에 응하지 않으면 억지로 예를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있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있고, 인을 잃은 후에 의가 있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있게 되었습니다.

ⓒGetty Image

노자는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가 왜 道, 德, 仁, 義, 禮의 순서로 타락해 갔는지 역사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주장하는 仁義禮가 보편적인 도덕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도가의 일반적인 입장입니다. 상덕은 요순 이전의 태고시대의 덕을 말합니다. 이 때는 타고난 자연 그대로 정치를 했으니 따로 무엇을 함이 없었으며, 백성의 복종을 얻기 위한 인위적 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권력을 얻기 위해 이 덕의 겉모양을 지키는 정치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덕입니다. 인위적인 의도와 수단이 있으면 자연의 덕은 사라집니다. 그렇게 인의예가 차례로 나왔지만 질서를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인의예는 모두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온 사적인 정치도덕이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예야말로 충성과 믿음이 없는 위선이며,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우두머리라고 유가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투계를 좋아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기 닭을 가지고 닭을 훈련시키기로 유명한 기성자라는 사람을 찾아가지요. 기성자한테 왕은 자신이 가지고 간 닭을 백전백승의 싸움 닭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열흘 후에 왕은 기성자를 찾아갑니다. 닭이 잘 훈련되었는지를 묻자 기성자가 말합니다.
“아직 덜 되었습니다.”
이에 왕이 왜 아직 덜 되었다고 하느냐고 묻자 기성자가 말합니다.
“닭이 허세가 심하고 여전히 기세등등합니다. 그래서 아직 부족합니다. 열흘 후에 다시 오십시오.”
왕은 돌아갔다 열흘 만에 와서 다시 묻습니다.
“이제는 되었느냐? 이제 백전백승할 수 있는 닭으로 길러졌느냐?”
기성자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 닭은 아직도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다른 닭의 날개짓하는 소리만 들어도 싸우려고 덤빕니다. 그러니 아직은 안 되겠습니다.”
아무튼 왕은 이번에도 그냥 돌아서고, 다시 열흘 후에 찾아옵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제 되었느냐?”
기성자가 그때서야 이제는 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묻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지금은 되었다고 하느냐?”
그러자 기성자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른 닭이 울고 날개짓하는 소리를 내도 꿈쩍도 안 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면서 흡사 그 모습이 나무로 만들어놓은 닭 같습니다. 이제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들이 감히 덤비지도 못하고 도망가 버립니다.”
- 『장자』, 「달생達生」 편

덕(德)은 한마디로 좋은 습관을 말합니다. 도를 몸과 마음에 받아들여 이루기 위해서 꾸준히 실천하는 습(習)이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실수도하겠지만 끊임없이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여주는 예(禮)가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 그 근본에 있는 도(道)를 따르기 위해서 덕(德)을 몸과 마음에 쌓아야 합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이유와 자기의 고백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고난을 받고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따라다니던 예수님의 결정적인 말에 항변하며 예수님을 꾸짖습니다.

우리도 좋을 때는 예수님 이름으로 무엇이든 다 할 것처럼 의기투합하지만 막상 현실의 위험이 점점 다가올수록 그 의기는 약해지고, 때로는 예수님도 하느님도 필요 없고 오로지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현실에서 자기의 희생이나 자기에게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할 때에는 예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꾸짖고, 예수님의 의지를 바꾸어 나의 의지를 앞세우려 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은 세 가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일! 그것은 “참 나”를 찾는 일입니다. 거짓된 나의 모습, 처세술에 능해진 나의 모습을 떨쳐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일! 남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의 십자가만이라도 자기 몫의 분량만큼이라도 감당하는 일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질 때에 우리는 때때로 힘에 겨워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뒤따라가는 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 예수님이 목숨을 걸고 하려했던 일들을 행하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꾸짖은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습니다. 여기에서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는 것은 배척하고 버린 것이 아니라 “내 뒤로 돌아와라” “내 뒤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의 길은 반드시 가야 할 과정으로 못 박고 그에 따라 제자들이 서야 할 위치, 곧 예수님의 “뒤로 돌아와서 따를 것”을 당부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은 그의 삶이 죽음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여전히 자기 개방과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는 모험입니다. 동시에 비인간화의 세력과 그 악한 숨결이 이루고 있는 삶의 구조 속에서 박제화 된 교회가 과감하게 예수님의 뒤로 물러서서 스스로의 안정과 특권을 포기하고 새 시대의 도래를 위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람의 아들을 따라가는 자기 변혁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예수를 꾸짖는 베드로”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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